시대적 배경: 유대인과 나치
이 작품의 핵심은 홀로코스트 시대에 유대인들이 어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는지를,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치 독일(1933–1945)은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독재 정권으로, 전체주의와 반유대주의,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정책을 펼침
- 유대인 박해는 체계적이었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수용소로 보내져 강제노동, 실험, 집단학살(홀로코스트)을 저질렀다
- 아우슈비츠는 가장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로, 110만 명 이상이 이곳에서 학살되었고 그 중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는 사실.
작품은 그 참혹한 현실을 보여주되, 어린아이의 눈으로는 그 끔찍함이 온전히 해석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관람자에게 더 깊은 충격을 안겨줘. 브루노의 순진한 질문들에서 역으로 당시 어른들의 광기어린 모습이 강조되는 점이 놀라운것같았습니다.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줄거리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나치 장교 랄프의 아들인 8살 소년 브루노가 베를린에서 아버지의 전근으로 폴란드의 한 외딴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됩니다. 이 집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인근에 위치해 있지만, 브루노는 그곳이 단순한 '농장'이라고만 생각합니다. 외롭고 심심한 브루노는 집 주변을 탐험하다가 철조망 너머에서 줄무늬 옷(죄수복)을 입은 동갑내기 유대인 소년 슈무얼을 만나게 됩니다. 둘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우정을 쌓아가지만, 브루노는 슈무얼이 왜 그곳에 있는지, 왜 줄무늬 옷을 입고 있는지, 수용소의 실체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브루노는 점차 슈무얼의 삶에 대해 알게 되고, 슈무얼이 아버지를 잃어버린 사실을 듣고는 그를 돕기로 결심합니다. 브루노는 슈무얼이 준비한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철조망 밑을 파고 들어가 수용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두 소년은 슈무얼의 아버지를 찾으려다 군인들에게 붙잡혀 다른 수용자들과 함께 가스실로 끌려가고,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브루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 부모는 뒤늦게 수용소로 달려오지만, 이미 브루노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 뒤였습니다
명장면
- 브루노와 슈무얼의 첫 만남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하는 장면은,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전쟁과 편견의 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브루노가 파벨에게 상처 치료를 받는 장면
브루노가 타이어 그네에서 다쳐 집안일을 하던 줄무늬 옷의 파벨(수감된 유대인 의사)에게 치료받는 장면은, 인간성과 신분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 브루노와 슈무얼이 마지막으로 손을 잡는 장면
수용소에서 두 소년이 손을 맞잡고 가스실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의 가장 충격적이고 슬픈 명장면으로 꼽힙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전쟁과 증오, 편견이 빚은 비극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명대사
- “정확히 뭐가 다른 거지? 그는 궁금했다.
-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줄무늬 파자마를 입고 어떤 사람들이 군복을 입는지는 누가 결정하는 거지?”
(What exactly was the difference? he wondered to himself. And who decided which people wore the striped pajamas and which people wore the uniforms?)
→ 이 대사는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차별과 편견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 “우리에겐 선택의 의지가 없잖소. 이것이 우리의 임무...”
“아뇨, 그건 당신의 임무예요, 우리가 아니라 당신 혼자만의 임무라고요.”
→ 전쟁과 악행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는 대사입니다. -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 내 아들이 저런... 저는 애국자입니다. 애국자 좋아하네!”
→ 브루노의 할머니가 나치의 이념과 가족의 선택을 비판하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느낀점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어린이의 순수한 시선을 통해 전쟁과 홀로코스트의 비극, 그리고 편견과 증오의 무의미함을 강렬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두 소년의 우정, 그리고 그 끝에 다가오는 충격적인 결말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과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명장면과 명대사들은 모두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브루노가 나쁜 결말을 맞이할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브루노만을 불행하다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는데,
영화속에 나오는 브루노와 친구 슈뮤얼이 똑같은 비극에 처했음에도 한쪽만을 불행하게 여긴 것은,
수용소라는 공간과 수형복이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인식을 한쪽편에 기대게끔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의 비극이었던 그 때의 영화를. 슬프게 잘 보았습니다.